폭싹 속았수다! 지독한 K-유신 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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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75회 작성일 25-04-09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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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덕선 의협 의료정책연구원장
최근 정부는 보건복지부령으로 의료업무를 방해할 목적으로 인터넷 매체 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다른 의료인을 특정할 수 있는 정보를 게시하거나 공유하는 행위에 대하여 자격정지 12개월의 행정처분을 내릴 수 있는 행정처분 규칙 개정안을 공고했다. 정부는 이번 개정 사유를 의료인의 품위손상 행위로 판단했다. ‘의료업무 방해’라는 매우 애매한 용어로 의사면허를 1년간 정지시킬 수 있다는 발상이다.

선진국에서 의사 면허정지 처분은 대부분 환자를 대상으로 한 의료 행위를 판단의 근거로 삼는다. 의사가 환자에게 부정적 영향을 끼쳤거나 해를 입혔을 경우, 또는 의사의 의료 행위가 수준 이하로 판명될 때 구체적인 위반 내용을 명시하고 이에 따른 징계 조치가 통상적인 면허정지 절차이다. 면허정지가 1년이라면 대개 환자에게 심각한 위해가 발생했음을 의미한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인 ‘품위손상’을 이유로 한 처분 방식은 한참 시대착오적인 것으로 보인다. 서로 다른 사람의 업무에서 다른 동료를 특정할 수 있으면 어떻게 처벌할지도 궁금하다. 법이 갖는 보편성과 강제성은 무엇일까.
복지부는 자신들의 정책에 반하는 입장과 움직임에 대해 민주주의 사회에서 보기 힘든 악의적이고 다양한 방식의 편법을 동원하고 있다. 아마도 우리나라가 민주주의 국가이고 헌법이 정한 통치구조가 있음에도 의사나 의료 분야는 예외인 모양이다. 우리나라에서 의사는 반사회적 집단으로 이미 국민의 자격과 기본권을 상실한 듯하다. 계엄 포고령에서는 친절하게도 전공의가 처단의 대상임을 명확하게 밝혀주고 있다.
의사의 기본권 집단행동에 초헌법적 업무개시명령 남발
지난 2000년 의약분업 사태 이후로 우리나라는 다른 선진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의사에 대한 기본권 침해가 공중보건의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거침없이 자행되고 있다. 복지부는 의사의 정당한 집회결사의 자유도 줄곧 불법 집단행동으로 규정하고 있다. 잘못된 정부 정책에 저항하는 의사 집단을 제압하기 위해 ‘업무개시명령’이라는 매우 편리한 초헌법적인 조치가 정부가 쥐고 있는 핵폭탄인 것이다.
이것도 부족한지 지난 2024년에는 수련병원에서 집단사직서 수리 금지 명령, 수련병원 전공의 대상 진료 유지 명령 등 집단행동의 사태 전개나 정부 정책 추진 의지에 따라 다양한 인간의 기본권에 대한 탄압 조치를 최대한으로 활용하여 적용하고 있다. 이는 구시대의 중앙정보부 역할과 비슷하다. 윤석열 대통령은 포고령을 통해 국민의 기본권, 단체 행동권, 직업의 자유를 중대하게 침해했다고 판단했기에 대통령직에서 파면당했다. 아직도 우리나라에 헌법이 정한 통치구조에서 과거 독재 군사정권의 유신 잔재가 버젓이 살아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국민의 기본권 훼손으로 대통령도 파면당했는데 보건복지부는 의사의 기본권 침탈을 더 가속화하고 확장하려는 모순적인 시대에 살고 있다.
의협 집행부에 교사 금지 명령은 의료 판 긴급조치 9호와 동일
지난 1975년 5월 박정희 정권은 유신헌법에 따라 긴급조치를 발동했다. 긴급조치 9호는 유신체제를 반대하거나 비판하는 모든 행위를 철저히 금지하고 처벌한 대표적인 독재 통치 수단이었다. 저급한 통치 행위로 국민의 기본권을 일시적으로 제한하는 악법 중 악법이었다. 15개의 긴급조치 중 9호는 가장 악랄했다. 유신헌법을 부정하거나 반대하는 행위는 물론, 이를 표현하거나 논의하는 행위를 금하였고 집회 및 결사 행위를 봉쇄했다. 유신헌법과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내용의 기사, 책, 방송 등을 제작하거나 유포하는 행위를 금지했고 대통령과 정부에 대한 비판을 포함한 모든 반정부 활동을 막고 이를 위반하면 군사법원에서 최고 사형, 무기징역 또는 2년 이상의 징역형에 처한다고 공표했다. 실제로 이웃에 대한 고발, 택시 기사의 승객에 대한 고발 등 위협적인 탄압 정국에서 국민은 표현의 자유를 상실했다. 정부의 감시와 통제가 극에 달해 많은 국민은 공포에 사로잡혔고, 상호 신뢰할 수 없는 암흑의 시대에 갇히게 된 것이다.
최근 정부의 업무개시명령이 전공의 사직으로 무력화됐다. 정부는 지난 2024년 2월 6일 대한의사협회 집행부에 대해 ‘집단행동 및 집단행동 교사 금지 명령’을 발동했다. 교사 금지는 기본적으로 의사소통을 위한 상호작용이 근본인데 표현의 자유조차 말살하겠다는 조치인 것이다. 과거에 군사독재정권이 자행한 ‘의료 판 긴급조치 9호’인 셈이다. 이 같은 조치로 현 의협 회장과 부회장도 면허정지 3개월의 징계 처분을 피하지 못했다. 아마도 진료보다는 비대위 활동에 전념하라는 복지부의 뜻깊은 배려(?)로 해석된다.
문민정부에서 만들어진 업무개시명령을 보면 민주화 세력이 진정 민주화를 달성한 세력인지 아니면 권력투쟁에서 승리한 또 다른 유사 독재정권인지 분간하기 어렵다. 이도 저도 아니면 이것이 진정 진보 진영의 특성인지를 의심케 하고 있다. 업무개시명령은 의사의 단체 행동이 국민의 보건에 중대한 위해를 발생시키는 불법행위라는 판단에 따라 내린 조치라고 한다. 21세기 의료가 국가 단위의 제도에서 움직이고 의료가 기본권으로 정착된 조직화 된 의료에서 국가 전체의 의사가 동시에 직장 이탈과 진료를 거부하지 않는 한 국민 보건에 중대한 위해를 발생시킬 수 있다는 논리는 시대착오적인 동시에 근거가 매우 취약한 가설에 불가하다. 의료기관도 주말과 휴일에는 쉬는 날이고 다만 응급과 당직팀이 존재하기에 별다른 일이 생기지 않는 것인데, 이것이 바로 2차 세계대전 이후에 본격적으로 등장한 조직화 된 의료제도의 장점이다. 전직 대통령은 파업 의사를 두고 전장을 이탈한 군인으로 간주해 즉결 처형 대상임을 암시했다. 문민 대통령의 현대적 의료제도에 대한 이해 수준을 가히 짐작할 수 있다.
고위험 진료과 붕괴 속 정부 악의적 탄압 가속 페달 밟아
최근 의료개혁특별위원회는 면허제도에 대한 전반적인 검토를 했다고 한다. 과연 선진국에서 복지부가 나서서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의사의 집단행동에 대한 처벌로 면허정지나 취소 처분하는 나라가 있는지 되묻고 싶다. 현재의 집단행동 및 집단행동 교사 금지 명령을 위반한 경우 의료법에 따른 면허정지 처분, 그리고 더 나아가 전과자로 전락하는 형사상 업무방해죄 또는 이에 대한 교사 방조범으로 5년 이하의 징역, 1,500만원 이하의 벌금형도 기다리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공안 의료’로 고부담 진료과의 심각한 몰락을 목도하면서도 지속적으로 형사처벌의 수위를 높이는 각종 정책들은 의사들로 하여금 쓴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2025년 대한민국의 의사들은 과연 어느 시대에 살고 있는가. 대통령 탄핵 시대의 K-의료는 아직도 ‘유신 의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인가.
대한민국의 모든 의사 여러분, 정말로 폭싹 속았수다!
*출처: 청년의사 (https://www.docdocdoc.co.kr/news/articleView.html?idxno=3027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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