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대면 진료, '편리함'보다 '의료의 본질'과 '안전'이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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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101회 작성일 25-06-13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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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숙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원 전문연구원
코로나19 팬데믹은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의료체계의 패러다임을 바꾸어 놓았다. 그 대표적인 변화 중 하나가 비대면 진료다.
코로나19가 유행하던 시기 한시적으로 허용되었던 비대면 진료는 환자의 의료 접근성을 높이고, 편리한 의료이용을 가능하게 했다는 평가와 함께 이제는 제도화의 갈림길에 서 있다.
그러나 '편리함'이라는 단어 하나로 비대면 진료의 안전성과 법적 책임성 문제를 덮을 수는 없다. 환자와 의료진, 나아가 사회 전체가 신뢰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하지 않으면 오히려 의료의 질 저하와 법적 분쟁의 온상이 될 수도 있다.
정부가 비대면 진료 제도화를 주장할 때 흔히 내세우는 근거는 선진국들에서는 비대면 진료를 활발하게 활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선진국의 비대면 진료 시스템과 우리의 그것은 매우 큰 차이를 보인다. 비대면 진료를 제도화한 해외 국가들은 '의료의 본질'을 포기하지는 않았다.
프랑스가 대표적인 예다. 프랑스 정부는 일찍부터 비대면 진료를 법적으로 허용한 국가이고, 코로나19 기간 동안 비대면 진료가 활발하게 이루어진 국가이다. 그런데 그 시스템 안을 들여다보면 우리나라와 많이 다르다.
프랑스에서는 비대면 진료를 대면 진료의 보조 수단으로 명확히 규정하고 있으며, 세 가지 필수조건, 즉 진료 경로 준수(주치의나 기존 진료 루트를 지킬 것), 지역성 확보(환자와 의사 간 지역적 연계), 대면 진료와 병행 원칙을 모두 갖춘 경우에만 비대면 진료를 허용한다.
이 세 가지 원칙은 단순한 권고가 아니다. 이를 무시한 채 비대면 진료를 시행할 경우, 의료윤리 위반은 물론이고 공중보건법 위반이 되며, 이로 인해 발생한 법적 책임은 전적으로 의사 본인이 부담해야 한다. 이러한 원칙을 지키지 않는 상업적 온라인 플랫폼이 증가함에 따라, 프랑스는 최근 이들에 대한 규제를 더욱 강화하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상황은 오히려 역행하고 있다. 최근 국회에서 발의된 의료법 개정안은 비대면 진료를 상시 허용하는 내용을 담고 있으며, 온라인 플랫폼에 대한 일부 관리·감독 조항은 포함되었지만, 안전한 비대면 진료를 위한 필수 조건에 대한 규정은 전혀 담겨 있지 않다.
이는 제21대 국회에서 발의된 이전 법안들보다 오히려 후퇴한 내용이며, 비대면 진료의 허용 여부를 처음 논의하던 수준으로 다시 돌아간 것과 다름없다.
국내 플랫폼 중심의 비대면 진료는 의료 서비스라기보다는 상업적 서비스에 가까운 형태로 운영되고 있는 경우가 많다. 환자의 건강정보 보호는 허술하고, 의사의 전문성보다 접근성과 편의성 위주로 기능이 설계되어 있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의 비대면 진료는 의료의 본질이라 할 수 있는 신뢰, 연속성, 안전성을 담보하기 어렵다.
비대면 진료가 미래 의료의 중요한 축이 될 것이라는 데 사실 큰 이견은 없다. 그러나 단순히 제도를 '허용'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해외 국가들, 특히 팬데믹 이후 비대면 진료를 제도화한 유럽 각국은 오히려 안전성과 효과성을 확보하기 위해 다양한 기준과 조건들을 세분화하고 현실에 맞게 지속적으로 보완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비대면 진료의 상시화를 논의하기에 앞서, 안전한 비대면 진료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구체적으로 필수조건에 대한 내용을 담은 법안 마련이 시급하다.
비대면 진료 대상, 질환, 지역 범위, 제공 의료기관, 법적 책임소재, 대면 진료 병행, 의료정보 보호 및 상업적 플랫폼 관리 강화 등 안전한 비대면 진료가 이루어지기 위한 필수조건이 산재해 있다.
특히 비대면 진료의 안전성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비대면 진료 중에라도 의사의 판단에 따라 신속하게 대면 진료로 전환할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내용은 제도화 과정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다.
비대면 진료는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환자 생명의 문제다. 진료가 단순히 빠르고 편리하다고 해서 좋은 진료는 아니다. 대면이든 비대면이든, 의료는 결국 환자의 생명과 건강을 책임지는 전문적인 행위이기 때문이다.
제도 설계가 그 본질을 잊을 때, 진짜 위험은 시작된다. 지금 대한민국이 마주한 것은 의료의 미래가 아니라, 의료의 본질을 어떻게 지켜낼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다.
출처 : 의협신문(https://www.doctors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59827&sc_word=&sc_word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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